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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결혼 그 자체야, 이 사람아 뇌를 드소서

12년 만의 반가운 소회.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풋풋한 시절로의 타임 슬립.



하지만 이젠 누구도

그 시절의 그들일 수 없음에

착찹한 괴리감이 물밀듯 밀려오는구나.


세상에.

엄연히 결혼을 앞둔 동창 녀석을 눈앞에 두고도

결혼이라는 것에 관한 생각은 털끝만큼도 들지 않는다.

아마 식장에 가서도 마찬가지겠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결혼이라는 건

알아듣지 못할 외국어나 마찬가지니까.



머나먼 오지에서 살아가는

원주민 부족의 언어보다도 낯선.

마치 고대의 언어, 혹은

수천 년 전에 쓸쓸히 사라진 사어처럼.


세월이 흘러 이윽고

동창 60명 중 59명이 모두 결혼하고 나만 남는다 해도,

결혼은 여전히 나에게 해독할 수 없는 언어로 다가오리라.



나는 그저 내가 온 별에서

연락이 닿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

이런 나와 아무 편견 없이 통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뿐.



 

그러니까, 나는 독실한(?) 독신주의자다.

(엄밀히 말하자면 '비혼(非婚)'주의)

내가 먼저 나서서 얘기하지는 않지만,

누가 결혼에 대해 나에게 물어보면

'난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깔끔하게 못을 박는다.

혹자는 '처음엔 다들 그렇게 말하죠'라고 한다.

기억은 안 나지만, 가까운 누군가에게서는

'아직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나서 그래'라는 얘기도 들었다.

(초 쳐서 미안한데, 문제는 결혼 그 자체야, 이 사람아.)

근데 참 신기하다?!

결혼 한 번만 하면 다들 신이 되는가 보다.

남의 여생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꿰뚫어 보게.


근데 워쪄? 본인은 벌써 10년 넘게

대쪽 같은 독신주의를 고수 중이신데.


중학교 시절, 윤리 교과서에서

'부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자는 부친이 될 자격이 없다'는

철학자 장 자크 루소의 말을 우연히 발견하고서

'절대! 네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식은 안 가질 거야!'라고 굳게 다짐한 나다.

아니, 그전에도 나는 이미

농밀한 분노와 독기로 가득 찬

어둠의 무한장(無限長) 터널과도 같은

유소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결혼이라는 제도의 절대적인 무용성을

세포 구석구석까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결혼의 말로라는 게 어떤 것인지

그 누구보다도 철저한 현장학습을 반복하며 깨쳤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리?


좀 더 커서 대학에 들어가고

바깥세상에도 조금씩 발을 내디디면서

'결혼할 땐 8대2, 이혼할 땐 5대5' 따위의

웃기지도 않는 사회 현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뭐, 실은 벽에 변(便)칠하기 전까지만이라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런 맘이 없다고 하면 당근 순도 100% 뻥이지.

(난 독신주의자이지 성직자는 아니라고 =_=;)


독신주의는 거꾸로 생각하면 곧

자유연애 주의이기도 하니까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미드

[How I Met Your Mother]에서

난봉꾼 캐릭터인 바니도

자기 동생의 결혼식을 나무랐었지.

'미친 거 아냐 -_-? 죽여주게 쩌는 싱글 생활을 왜 때려치워?!'라는 식으로.


물론 나는 바니처럼

난잡한 성생활에 푹 빠져들 생각도 없고,

그럴 상황(환경? 능력? 아무튼)도 안 된다.

그저 법적인 강제력에 구속되지 않고

마냥 좋을 때까지 계속 만나다가(혹은 함께 살다가)

서로의 마음이 엇나가는 때가 오면

미련 없이, 쿨하게(쉽진 않겠으되) 갈라설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좋다.

Separate Ways.


21세기 들어 여러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시민결합'이라는 개념까지 들먹이면 좀 복잡해지고,

여하튼 손바닥 뒤집듯이 결혼과 이혼을 넘나들거나

차마 이혼하지 못해 사랑이 아닌 정으로 사는 삶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짝이 없다.

안 그런 커플도 예상 외로 꽤 있겠지만,

요즘은 결혼과 이혼이 하나로 묶인 세트처럼 취급되어

화장실 드나드는 것처럼 손쉬운 일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처리해야 할 용무가 생기면

문 열고 화장실에 들어갔다가(결혼),

간단하게 볼일만 보고 나서,

밑 닦고 물 내리고 문 닫고 나오면(이혼)

그걸로 땡인 거다.

이 얼마나 간편한가!

아, 물론 밑을 닦는 과정이 지저분해질 수도 있고,

그러면 빈정 상하는 일도 많이 겪어야 하겠지.


난 그게 싫다.

그냥 자연스럽게,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본성을 존중하여

마음에 따라 어느 정도는 왔다 갔다 할 여유는 있어야지.


정 때문에 별 수 없이 같이 살아야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려면 불륜을 저질러야만 하는,

면회도 야외활동도 24시간 금지된 데다가

창문은커녕 창살도 없는 독방에 수감되는

그런 종신형 같은 삶도 싫고.




여하튼, 이러저러한 연유로

나는 이번 생에서만큼은 독신이고 싶다.

(혹시나 해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기서 독신은 '비혼'이라는 의미다.)

10년 후에도 여전히 내 인생의 선택사항에서

'결혼'이 빠져 있기를 바란다(물론 자살도).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또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도

같은 바람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나는 비혼주의가 좋고, 비혼주의자들이 좋다.

비혼주의자들, 감바레-!!!






P.S

덧붙여, 지금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주변인들은

그 깨알 같은 알콩달콩 모드가
언제까지고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모쪼록 모든 커플들이

호혜평등과 상호존중 속에

사랑과 평화를 싹틔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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